만년필이란 펜 축 속에 잉크를 저장하고, 글을 쓸 때에는 저장된 잉크가 모세관 현상에 의해 알맞게 흘러 나오도록 만들어진 필기용구이다. 두 갈래로 갈라진 촉의 모양에 따라 필기의 굵기와 형태가 달라질 수 있으며, 펜을 쥐는 각도와 사용자에 따라 필기 방법이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만년필의 장점은 잉크병을 휴대할 필요가 없다는 것과, 끊임없이 펜 촉을 잉크에 찍어 쓰는 번거로움이 없다는 점 등이지만, 가장 뛰어난 장점은 그 쓰는 감촉에 있다. 즉, 그 펜을 쓰는 느낌이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다는 데에 최대의 매력이 있다.

만년필이 등장하기 이전 유럽에서 사용되던 펜은 잉크를 따로 갖추고, 사용할 때마다 일일이 펜에 잉크를 찍어서 글을 써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1809년 영국인 프레더릭 B.폴슈는 잉크 저장 탱크를 갖춘 밸브식 필기구를 발명하였는데 이것이 만년필의 원형이다. 폴슈의 만년필은 수차의 원리를 이용하여 저장 탱크의 잉크가 펜촉으로 전달되게 한 것이었으나 잉크의 저장 기능만 가졌을 뿐 유출을 조정하는 기능은 갖지 못한 불완전한 필기구였다.


1883년 미국의 평범한 보험회사 직원이었던 루이스 에드슨 워터맨은 중요한 계약을 따냈다. 그는 고객이 계약서에 서명하도록 당시에 많이 쓰던 깃털 펜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고객이 서명하려는 순간 펜에서 잉크가 떨어져 계약서가 엉망이 됐다. 당황한 워터맨이 다른 종이를 가져오려 했지만 고객은 불길한 징조라며 계약을 취소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워터맨은 잉크가 떨어지지 않는 펜을 만들겠다고 작정한다. 그는 펜 내부에 잉크를 저장하였다가 모세관 현상을 이용하여 적당히 흘러 나오게 하는 장치인 펜심 기구를 고안해 1884년에 특허를 받았다.

워터맨이 현대적인 만년필을 발명한 후에도 펜심은 계속 개량되어 어떤 기후나 환경에서도 잉크의 유출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제조공정은 수공업의 형태를 면하지 못해 연간 수백 개의 생산이 고작이었다. 초기의 이런 만년필을 대중화하는 데 공로가 큰 사람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카 만년필 회사를 창립한 조지 새포드 파카다. 현존하는 만년필 제조회사 중 가장 오래된 회사인 파카사는 주머니에 꽂고 다닐 수 있도록 클립을 다는 등의 변화를 주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로부터 만년필은 주머니에 넣어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는 필기구로 많은 사람들에게 쓰이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대중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20세기에 만년필은 세계사를 기록하는 펜으로서 확고한 위상을 지켰다. 세계사의 중요한 현장에서 최고 의사 결정권자의 앞에는 늘 만년필이 놓여 있었다. 만년필은 러일전쟁을 종결지은 1905년의 포츠머스조약, 제1차 세계대전 후의 국제 관계를 확정지은 1919년의 베르사유조약을 비준하는 테이블에 올랐다. 1926년 찰스 린드버그는 세계 최초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 뒤 감격의 비행일지를 만년필로 작성했다. 1945년 연합군 총사령관인 아이젠하워 장군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협정에 만년필로 서명하였다. 1990년 10월 3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 독일이 출범하던 날 서독의 콜 총리와 동독의 메지에르 총리의 손에도 만년필이 쥐어져 있었다.


현대에 와서 만년필은 단지 문화의 도구일 뿐만 아니라 골동품적 가치를 지닌 디자인 작품으로서 수집의 대상으로까지 위상이 격상되었다. 컴퓨터 사용이 일상화하면서 한때 구세대의 전유물쯤으로 여겨진 적도 있었지만 최근 만년필은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성공한 사람의 액세서리’라는 이미지가 강해지면서 20, 30대의 젊은 층에서도 고가 만년필 소비가 늘고 있다. 만년필은 특히 선물용으로 인기가 높다. 받는 사람의 ‘성공을 기원한다’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새하얀 와이셔츠 주머니에 ‘명품’ 이미지가 두드러지는 만년필을 꽂고 다니는 것은 성공한 사람의 전형처럼 여겨진다.

만년필은 펜 축(軸) 속에 잉크를 저장하고, 글을 쓸 때에는 저장된 잉크가 모세관 현상에 의해 알맞게 흘러 나오도록 만들어진 필기용구이다. 축에는 에보나이트(Avonite), 펜촉에는 14금을 주로 사용하고, 펜촉의 끝에는 이리듐과 같은 특수 소재를 용착(熔着)시켜서 마모를 방지하고 있다. 또 만년필에는 잉크가 새어 나오는 것을 방지하는 동시에 언제나 잉크가 원활하게 흘러나와서 일정하게 쓸 수 있게 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만년필의 개량에는 펜촉뿐만 아니라 잉크의 보급이나 잉크가 흘러 나오는 방법, 또는 꺼내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구조 등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다.